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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온베르거

     

    물에빠진 사람을 구하는 훌륭한 수상 구조견 레온베르거의 기원과 수상구조견으로서 활약상, 세계대전에서도 살아남은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1. 하인리히 에슬리히의 레온베르거

    레온베르거(Leonberger)의 기원은 19세기 독일의 작은 도시인 레온베르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견종은 독일 정치인이자 브리더였던 하인리히 에슬리히(Heinrich Essig)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에슬리히는 1830년대 중반부터 대형 견종에 관심을 두고, 당시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견종들을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레온베르크 시를 상징하는 사자를 닮은 개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품위 있고 웅장한 외모와 동시에 친근하고 온화한 성격을 가진 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레온베르거의 혈통은 세인트버나드(Saint Bernard), 뉴펀들랜드(Newfoundland), 그리고 그레이트 피레니즈(Great Pyrenees)라는 대형견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에슬리히는 이 세 가지 견종을 교배하여 사자처럼 인상적인 외모를 지닌 개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개의 이름을 자신의 고향인 레온베르크에서 따왔고, 실제로 황금빛의 풍성한 갈기를 가진 레온베르거는 사자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특히 그의 털 색과 강력한 체구는 에슬리히가 원했던 사자의 이미지와 부합했습니다. 에슬리히가 개발한 레온베르거는 곧 유럽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와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스(엘리시) 같은 유럽의 여러 왕실 인사들이 이 견종을 애완견으로 길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와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2세도 레온베르거를 애완견으로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 전역에서 귀족들의 반려견으로 자리 잡으면서, 레온베르거는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견종으로 유명해졌습니다.

     

    2. 물에빠지는 사람을 구하는 레온베르거

    수상견 레온베르거(Leonberger)는 강력한 체력과 뛰어난 수영 능력 덕분에 역사적으로 수상 구조견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이 견종은 대형견으로서의 뛰어난 근육 발달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물 속에서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또한 레온베르거는 매우 지능적이고 주인의 명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 복잡한 구조 작업에서도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레온베르거가 수상 구조견으로 활약한 역사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그들의 수영 능력은 뉴펀들랜드나 세인트버나드 같은 대형견을 교배한 결과로 유래된 것으로, 이들의 조상견은 이미 수상 작업에 특화된 견종들이었습니다. 레온베르거는 이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구조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두꺼운 이중모는 차가운 물에서도 체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강한 체력은 장시간의 수영에도 지치지 않게 만듭니다. 레온베르거는 특히 유럽에서 수상 구조 작업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강, 호수, 해변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투입되었습니다. 레온베르거는 물 속에서의 방향 감각이 뛰어나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빠르게 발견하고 구조하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들의 강력한 턱과 입은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하게 구조 대상자를 붙잡을 수 있어, 익수자를 안전하게 물 밖으로 끌어내는 데 적합했습니다. 이 견종은 단순히 구조 활동을 넘어서, 물에 빠진 사람을 끌어내어 다시 뭍으로 데려오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구조 작업에서 지휘자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며 효율적인 구조 활동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한, 레온베르거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견종이기도 합니다. 구조 활동 중에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와 혼란 상태에 놓일 수 있는데, 레온베르거의 온화한 성격과 커다란 체구는 구조 대상자에게 안정감을 주며, 그들이 구조 활동에 협조하도록 돕습니다. 이는 구조의 성공률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은 레온베르거가 다가올 때 그들의 신뢰감 있는 외모와 차분한 태도에 안심하게 되고, 공포 속에서도 빠르게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레온베르거가 수상 구조견으로서 활동하는 모습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해안 지역에서 특히 자주 목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레온베르거가 주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훈련되어 왔으며, 그들의 큰 체격과 강한 근력이 물 속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붙잡고 구조하는 데 매우 유리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수상 구조팀에서는 뉴펀들랜드와 함께 레온베르거를 중요한 구조견으로 훈련시켰으며,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출하는 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구조 활동은 단순히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레온베르거는 위험에 처한 보트나 카약을 끌어내는 데도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수상 구조팀과 협력하여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뛰어난 지능과 체력 덕분에 수상 구조 작업에서 매우 높은 신뢰를 받았고, 레온베르거가 구조 작업에 투입될 때는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도 레온베르거는 유럽 일부 지역에서 수상 구조견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들의 이중모와 강력한 체력 덕분에 특히 차가운 물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견종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순종적인 성격과 인내심 덕분에 사람들과의 협력이 필요한 구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 레온베르거는 가족용 반려견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으로 그들의 수상 구조 활동은 이들이 단순히 사랑스러운 반려견에 그치지 않고, 중요한 작업견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레온베르거는 대형견 특유의 강력함과 수상 활동에 특화된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어, 수상 구조견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낸 견종입니다. 이들은 구조 대상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위기 상황에서도 주인의 지시를 정확히 이행하는 충성스러운 동반자로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3.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다.

    제1차 세계대전과 레온베르거 레온베르거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동안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 전역이 전쟁터로 변했고, 많은 국가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큰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식량과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대형견을 기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대형견은 많은 양의 식량을 필요로 했지만, 전쟁 중에는 인간조차도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형견을 유지하는 것은 사치로 간주되었고, 많은 레온베르거가 버려지거나 사육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쟁 중에는 수많은 가축과 반려동물이 징발되었고, 레온베르거도 그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일부 레온베르거는 전쟁터에서 짐을 나르거나 군인들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견종의 강력한 체력과 지구력은 군사적으로도 유용했기 때문에, 일부 개체는 전쟁 물자를 운반하거나 구조 활동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레온베르거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생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레온베르거의 개체 수는 크게 감소했으며,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쟁 전 유럽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레온베르거는 전쟁 후 왕정이 붕괴하거나 귀족 가문들이 몰락하면서 그 수요가 급감하게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었고, 많은 가정이 대형견을 기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레온베르거의 번식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레온베르거 레온베르거에게 더 큰 시련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동안 찾아왔습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레온베르거의 개체 수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심각한 생존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번 전쟁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으며, 민간인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전쟁 중에는 대형견을 기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대형견은 더 많은 음식과 공간이 필요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많은 가정이 파괴되거나 이주를 강요받았고, 그 결과 레온베르거를 포함한 많은 대형견이 버려지거나 살해당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대형견을 기르기에는 너무 많은 자원이 필요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형견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독일이 중심이 된 유럽 전역의 전쟁터에서는 많은 개들이 전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군대는 전쟁 물자 운반, 구조, 경비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개들을 사용했으며, 레온베르거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많은 개들이 죽음을 맞이했고, 이는 레온베르거의 개체 수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전후 유럽은 경제적으로 피폐해졌고, 대형견의 번식을 다시 시작하기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레온베르거는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지역에서 레온베르거의 개체 수는 극히 적은 수로 줄어들었고, 살아남은 개체들은 대부분이 혈통이 불확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전후에는 레온베르거의 보존을 위한 열정적인 브리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개체들을 바탕으로 번식을 시도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레온베르거를 멸종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1940년대 말, 전 세계적으로 레온베르거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 브리더들은 남아 있던 레온베르거들을 모아 이 견종의 번식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품종의 특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고, 점차 레온베르거의 개체 수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후 복원과 현재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도 레온베르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어려움을 견딘 후, 이 견종은 열정적인 브리더들과 애호가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었고, 다시금 유럽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견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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